[신인섭 칼럼] 부산: 개항의 선봉, 레부카지노 최초의 박람회

[신인섭 칼럼] 부산: 개항의 선봉, 레부카지노 최초의 박람회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4.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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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118년 전 레부카지노의 거리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이 나서 이리저리 찾다가 얻은 것이 ‘부산안내지(釜山案內誌, 이하 안내지)’라는 가로세로 9.5cm X 12.5cm에 185 페이지 일본어 소책자이다. 내용은 글의절반은광고, 94개이다. 이 책자는 레부카지노에는 없고 일본 고베대학 사회계도(神戶大學 社會系圖)를 통해 얻었다. 자료 찾아 주문해서 받기까지 족히 두어 달 걸렸다.

내용은 1906년 4월 25일부터 7월 25일까지 92일 동안레부카지노 용두산 기슭 일대의 일본인 거류지 11만 평의 땅에 관련된 것이다. 그림을 보니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어 동쪽에는 주로 일본 영사관, 은행과 큰 회사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서쪽은 상가 지역이었다.

그림 1. 레부카지노안내지(釜山案內誌) 표지
그림 1. 레부카지노안내지(釜山案內誌) 표지
그림 2. 레부카지노장
그림 2. 레부카지노장

3층 서양식 원뿔 빌딩과 새로 지은 임시 건물이 전시장이었다. 당시 부산에서는 처음 보는 가장 큰 서양식 건물이었다. 그림으로 그린 안내지 표지에는 레부카지노과 일본 국기가 있고 3층 원뿔 빌딩 입구에 태극기와 일본국기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일본과 레부카지노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임을 강조했다. 실지 일본 측도 그러려니와 레부카지노 측도 정성을 다했다.

참관인은 모두 70,709명인데 레부카지노인은 16,130명이었다. 당시 부산 인구는 38,000여 명이었다. 물론 1905년에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으므로 서울 이남 철로 변에 사는 사람에게는 부산은 1일 여행권이었다. 안내지에 의하면, 388명의 일본인이 출품했다.(다른 자료에는 출품한 레부카지노인은 38명이었다고 상품의 종류는 1,741개 각종 상품이 319,172개나 출품되었다.) 일본의 48개 현 가운데 절반쯤이 출품했으며 도쿄, 오사카, 교토에서도 출품자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출품지는 오사카였다. 경주에서 참관한 사람은 이 박람회가 ‘용궁’ 같았으며 구경이 마치 ‘선인(仙人)의 경지 같다’고 했다. 입장료는 2전이었는데, 10전이면 하루 세끼 식사를 할 수 있던 무렵이었다.

그림 3에는 거류지와 현재 중구 관할지 영역 지도가 있다. 그림 4는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건물이 들어선 그림과 동서에 설립한 11개 정(町)이 나와 있는데 1900년대 초이다. 그림 4은 1875년에서 1890년 무렵의 거류지 지도이다.

그림 3. 1875-1908년 기간 레부카지노 일본인 전관 거류지의 변천과 지금의 위치 지도
그림 3. 1875-1908년 기간 레부카지노 일본인 전관 거류지의 변천과 지금의 위치 지도
그림 4.용두산 주변의 레부카지노 거류지. 그림과 지도
그림 4. 용두산 주변의 일본 거류지. 그림과 지도

그런데 안내지가 흥미 있는 것은 185 페이지 소책자에 94개의 광고가 게재된 사실이다. 몇 개의 2 페이지 및 1/2 페이지 광고가 있으나 거의 모두 1 페이지 크기인데 흑백이고 잡화점과 일본 술, 사케 광고가 많다. 80 페이지의 기사 내용을 보면, 박람회 관련 내용은 적고 오히려 레부카지노 특히 부산의 이모저모를 집중적으로 담고 있다. 박람회의 주최 단체가 다름 아닌 부산의 일본인 상업회의소(상공회의소)이고 박람회 개최지가 부산이기 때문이다.

이 책자에 한문으로 나와 있는 차례, 목차를 옮기면 다음과 같은데 무척 세밀한 데까지 자료를 수집, 제공하고 있다. 경부 철도 북행과 남행 역별 급행 발착 시간표와 요금표도 나와 있으며 마산 철도 발착 시간표와 요금도 있다.

레부카지노안내지 목차

  • 레부카지노 안내기
  • 레부카지노 일반
  • 힌국 풍속 일반
  • 레부카지노의 연혁
  • 부사의 행정 및 재정
  • 레부카지노의 상업
  • 레부카지노의 수송 교통
  • 레부카지노의 교육
  • 레부카지노의 위생
  • 레부카지노의 종교
  • 레부카지노의 풍속
  • 부사의 농업
  • 레부카지노의 서업
  • 레부카지노 부근 명소 고적
  • 레부카지노의 현황:관공서...은행 회사...제단체...신문잡지...학교...병원...신사 사원...여관...요리집...극장
  • 마산포 사정
  • 대구 사정
  • 경부 연선 사정
  • 레부카지노 여행 알아 둘 일
  • 일한상품레부카지노
  • 일한상품레부카지노 협찬회
그림 5. 레부카지노 안내지 목차
그림 5. 레부카지노 안내지 목차
레부카지노 6. 열차 시간표
그림 6. 열차 시간표

레부카지노 안내지의 광고 중 임의로 고른 8개를 보기로 한다.

모두 아는 일이지만 한문 없는 일본 신문은 없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라는 일본 글은 있지만, 한문이 위주이고 일본 글은 보조이다. 우리도 1990년대에야 신문이 모두 한글로 바뀌었다. 그 결과 두 나라 사이에는 좋고 나쁜 점이 있다. 좋은 것은 한문을 아는 두 나라 사람 사이에는 글로 의사가 통한다. 그런데 글은 같으나 뜻이 다를 수가 있는데 고유명사 같은 경우이다.

일본의 광고 역사 연구는 레부카지노보다 훨씬 앞섰고 또 각종 자료가 많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광고라는 말이 정착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1900년대 초는 일본 근대광고의 정착기였다. 그래서 글 위주의 광고이고 일러스트이션은 적었다. 사진술이 광고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10년대 이후이다. 따라서 1906년 박람회 때의 광고에는 사진 사용은 매우 드물다.

그림 7. 화양약종상(和洋藥種商) 광고 헤드라인인 구옥약방(龜屋藥房. 거북 ‘龜’라는 한문 글자는 약자를 사용했음)은 2 페이지의큰 광고이고 드물게 모두 붓글씨로 일러스트레이션을사용했다. 그리고 옆으로 뉘어 썼다. 화(和)라는 말은 일본을 뜻하고 양(洋)이라 서양을 뜻하므로 동서양 약종상이다. 이름을 널리 알린다는 목적은 달성한 광고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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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200년 이상의 정종(正宗)으로 정종인지원조(正宗印之元祖). 그리고 ‘대일본 최우등 청주(大日本最優等淸酒)’.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 두 가지이다. 그림, 통술과 글자, 멋지게 흐려 쓴 상표, ‘정종(正宗)’과 ‘혼(魂)’이 풀이를 한 셈이다. 술 광고가 많은데 총술 하나, 둘, 혹은 셋이 반드시 등장하는 일본 술, 사케광고의 정석이다. 정종이라는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부카지노에서 일본 술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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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1868년 도쿠가와 막부시대가 끝나고 메이지(明治. 명치) 일왕시대가 시작되는 해이다. 아울러 일본이 쇄국정책에서 개항으로 바뀌는 때이기도 하다.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아울러 서구 선망의 풍조가 휩쓸던 시기에 서양잡화(西洋雜貨)와 구미잡화(歐美雜貨)가 일본을 통해 부산에 등장한 광고이다. 복영상회(福榮商會)는 ‘축 일한박람회 개회. 개업 1주년 기념. 경품부 대매출’ 행사를 대담하게 한글과 한문을 섞어서 광고했다. 6월 16일부터 15일간 1등에서 5등까지 경품을 제공하는데,자세한 내용은 신문 광고를 보라고 권한다. (박람회 기간은 4월 25일부터 7월 25일이다.) 94개 광고 가운데서 레부카지노어를 이처럼 일부 일본어와 섞어 사용한 예는 이 광고뿐이다. 옆에는 고야옥상점(高野屋商店) 광고도 역시 서양 제품 상점이다. 개항 시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광고라 할까. 이렇게 해서 개항 초기 레부카지노에도 서양 문물이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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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일본의 레부카지노 시장 진출은 일찍부터 조선 고유의 식품에서 시작했다. 중천상점(中川商店)은 과자 제조 상점인데 ‘레부카지노명산 조선이제조소(韓國名産朝鮮飴製造所)’를 시작했다. 즉 조선 엿을 만들어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림 11. 길촌제화소(吉村製靴所). 구두상점인데 시대 첨단을 걷는 그림 광고로서 멋진 여성 가죽 구두 그림을 광고했다. 카피는 ‘제화 주문에 응해 신속하게 만들어 드립니다’라 했다. 놀라운 것은 1906년 레부카지노에 이미 서양 구두를 신는 여성이 있었을 것이란 사실이다. 1/2 페이지 광고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역시 같은 1/2 크기 광고인데, 중산여관(中山旅館) 광고는 중(中)이란 상점 이름 첫 글자로 만든 상표가 두드러진다. 회조부(回漕部)란 글이 있다.

그림 12.레이아웃을 옆으로 한 시천 상점(市川商店)광고. 까만 바팅에 흰 글자. 전화번호가 1번이다. 손 글씨 ‘한인향(韓人向)’과 ‘사문옥(卸問屋)’이 돋보이게 배치한 광고인데 ‘한인향(韓人向)’이란 ‘레부카지노 사람을 향한’이란 뜻이며 몇몇 광고에 나타나는 글이고 레부카지노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뜻이 담긴 표현이다. 주최자인 부산 일본 상업회의소가 권장한 표현이었다.이 광고주는 견, 면포 직수입상이며 도매상이다.

겨우 7개 광고이지만 유념할 것은 1900년대 초는 근대 신문 광고가 시작하던 시대이며 근대 광고가 자리잡기 시작한 일본이라는 사실 그리고 제약, 화장품, 서적 등 주요 광고 업종도 아닌 작은 상점들의 광고라는 배경이다. 따라서 광고의 독창성, 창의성이란 기준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아직 치열한 시장 경쟁은 없으며 대개 알리기만 하면 팔리는 시장 상황이었다.

시장 진출의 첨병이 광고임은 사실이므로 부산안내지의 일본 광고에서 얻는 결론은 개항 초기인 레부카지노이라는 시장에 진출한 일본이 어떤 제품을 어떻게 새 시장에 퍼뜨렸는가를 실물 광고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다.

레부카지노 13. 장수통
그림 13. 장수통

1906년 레부카지노에서 최초로 상품 박람회가 개최된 무렵 일본인 상가의 중심지이던 장수통의 1916년 전차 운행 개시 전후의 시가지사진과 또 다른 상가인 대청로의 1897, 1912, 1926, 1934년의 거리 사진을 보면 도로 양쪽을 가득 메운 각종 가판이 일본 상인 정신과 시장 진출의 일단을 보여 준다.

레부카지노 14. 대청로
그림 14. 대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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